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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트라즈 섬 등대(Alcatraz Island Light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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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설명 알카트라즈 섬 등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만 내의 섬인 알카트라즈 섬에 위치한 등대로 미국 서부 해안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등대이다. 알카트라즈 교도소로 유명한 알카트라즈 섬의 남쪽 진입로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15m 높이의 등대였으나, 이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한 파손과 알카트라즈 교도소 건설로 인한 등화 간섭으로 26m높이의 등탑으로 교체되었다. 현재는 알카트라즈 섬 전체가 박물관이자 역사지구로 지정되어 보존중에 있으며, 이 등대는 알카트라즈 역사지구(우리나라의 사적과 유사한 문화재)의 일부에 속한다. 등대의 항로표지 시설 자체는 미국 해안경비대에서 관리하지만 등대 건물을 포함한 알카트라즈 섬 전역의 건물은 미국 골든게이트 국가 휴양지(Golden Gate National Recreation Area)에서 관리한다. 등대정보 번호 Admiralty(국제번호) : G4082, ARLHS : USA-003, USCG : 6-4315 위치 Alcatraz Island Trail, San Francisco, CA 94133 미국(US) 37°49′34.5″N 122°25′19.8″W 등고 65m 등탑높이 26m 관할기관 U.S. Coast Guard / Golden Gate National Recreation Area 점등일자 1854년 6월 1일) 광파표지 Fl W 5s 65m 22NM(41km) 음파표지 전기 혼(Horn)(NE) 4초 2회 취명, 30초 정명 전기 혼(Horn)(NW) 5초 1회 취명, 20초 정명(No. G4084, USCG 6-4325) 역사 1775년 : 스페인의 탐엄가 후안 데 아얄라(Juan de Ayala)의 샌프란시코 만 조사, 팰리컨의 섬이라는 의미인 알카트라즈 섬(Isla de los Alcatraces)이라는 이름을 붙임 1851~1852년 : 미국 의회에서 미국 서부 해안의 7개 지점에 등대를 건설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킴 1852년 등대 기초공사 시작

제주항로 운항 여객선 노선 및 총톤수

아래 표는 제주항과 육지를 연결하는 여객선의 정보입니다. 선명 노선 총톤수 (G/T) 항해속력 (KTs) 여객정원 (명) 선사 한일골드스텔라호 여수-제주 21,989 22 948 한일고속 뉴스타호 부산-제주 9,997 22 710 엠에스페리 블루펄호 완도-제주 9,788 21 877 한일고속 비욘드트러스트호 인천-제주 26,546 22 854 하이덱스 스토리지 산타모니카호 진도-상추자-제주 3,300 42 606 씨월드고속훼리 송림블루오션호 완도-하추자-제주 2,374 14 240 송림해운 아리온제주호 녹동-제주 6,266 21.5 818 녹동-제주 오션비스타제주호 삼천포-제주 20,584 19 860 현성엠티지 퀸메리2호 목포-제주 9,774 24 930 씨월드고속훼리 퀸제누비아호 목포-제주 27,391 22 1284 씨월드고속훼리 한일블루나래호 완도-제주 1,605 40 282 한일고속 실제 운항 시간이나 운항여부는 기상상황과 각 선사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기관정비 일정으로 운항이 일시 중단되거나 항차에 따라서는 대체선박을 투입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이런 선박이 제주도와 육지를 오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것은 총톤수(G/T)정보로, 태풍주의보 발효시 총톤수 7,000톤을 기준으로 운항 가능여부가 갈리게 됩니다.(기상특보시 선박 출항통제 기준) 물론 7000톤을 넘는 선박이라 하더라도 기상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판단하거나 선사 자체 판단에 의해서 얼마든지 결항할 수 있으므로, 해당 톤수를 우선 참조하되, 기상상황 악화시 선박 운항여부는 각 선사에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습니다.

제주 화북진지(화북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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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개요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5761번지 등 문화재 지정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6호 조선시대 제주 관방시설인 제주 3성 9진 중 하나로 당시 제주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주요 관문이었던 화북포구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성곽유적이다. 설명 조선 초기 화북포구는 수군 기지였던 수전소가 설치되어 있었고, 전선 3척과 격군 180명, 사수 87명이 배속되어 있었으나 포구 바닥이 날카로운 현무암 암질로 되어있어 선저의 파손이 잦았고, 여기다 잦은 풍랑으로 인해 전선의 운용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1555년(명종 10년) 을묘왜변 당시 왜구의 침입으로 화북수전소(방호소)가 함락당하고, 이곳으로 상륙한 왜구 1000여명이 제주읍성을 3일 가량 포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후 화북수전소를 화북진으로 승격시키고, 진을 방어할 성곽을 축성하였는데, 기록에 따르면 당시 성의 규모는 606척(약 184m), 높이 10척(약 3m)로 동문과 서문의 2개 성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풍랑으로 잦은 선박의 파손을 겪던 화북포구의 항만 축조 공사를 1737년(영조 13년)에 시작하게 되는데 당시 제주목사였던 김정이 스스로 돌을 나르는 등 앞장서서 방파제와 선착장을 축조하였는데, 이 일로 무리를 한 김목사는 임기를 마치고 육지로 돌아가기 직전 화북진에서 과로로 사망하게 된다. 화북진이 기능하던 시기 배속된 병력은 조방장 1인 치총 2인, 방군 92명이었으며, 사후선 1척이 병선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기타 갑오개혁으로 전국의 군진이 폐진될 때 이 화북진도 같이 폐진되었으며, 이후 성벽 일부가 헐리는 등의 일이 있었으나 현재에도 북쪽과 서쪽을 중심으로 성벽이 잘 보존되어 남아있다. 성벽 내부에는 한 때(1926~1971년) 화북초등학교(당시 화북국민학교)가 자리하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화북 청소년 문화의 집'이 성 내부 자리에 위치해 있다. 화북진지 사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