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화북진지(화북진성)

     


    개요

    •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1동 5761번지 등
    • 문화재 지정 :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56호

    조선시대 제주 관방시설인 제주 3성 9진 중 하나로 당시 제주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주요 관문이었던 화북포구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성곽유적이다.

    설명

    조선 초기 화북포구는 수군 기지였던 수전소가 설치되어 있었고, 전선 3척과 격군 180명, 사수 87명이 배속되어 있었으나 포구 바닥이 날카로운 현무암 암질로 되어있어 선저의 파손이 잦았고, 여기다 잦은 풍랑으로 인해 전선의 운용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1555년(명종 10년) 을묘왜변 당시 왜구의 침입으로 화북수전소(방호소)가 함락당하고, 이곳으로 상륙한 왜구 1000여명이 제주읍성을 3일 가량 포위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후 화북수전소를 화북진으로 승격시키고, 진을 방어할 성곽을 축성하였는데, 기록에 따르면 당시 성의 규모는 606척(약 184m), 높이 10척(약 3m)로 동문과 서문의 2개 성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풍랑으로 잦은 선박의 파손을 겪던 화북포구의 항만 축조 공사를 1737년(영조 13년)에 시작하게 되는데 당시 제주목사였던 김정이 스스로 돌을 나르는 등 앞장서서 방파제와 선착장을 축조하였는데, 이 일로 무리를 한 김목사는 임기를 마치고 육지로 돌아가기 직전 화북진에서 과로로 사망하게 된다.

    화북진이 기능하던 시기 배속된 병력은 조방장 1인 치총 2인, 방군 92명이었으며, 사후선 1척이 병선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기타

    갑오개혁으로 전국의 군진이 폐진될 때 이 화북진도 같이 폐진되었으며, 이후 성벽 일부가 헐리는 등의 일이 있었으나 현재에도 북쪽과 서쪽을 중심으로 성벽이 잘 보존되어 남아있다.

    성벽 내부에는 한 때(1926~1971년) 화북초등학교(당시 화북국민학교)가 자리하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화북 청소년 문화의 집'이 성 내부 자리에 위치해 있다.

    화북진지 사진들

    화북진성 서쪽 성벽


    화북진지 북쪽성벽

    금돈지물

    화북 청소년 문화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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